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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봇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 원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유치환의 사진입니다. 청마는(1908~1967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극작가 유치진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경남 통영여자중학교에서 교사로 일을 시작하였으며 1931년 <문예월간>에 <정적>을 발표하면서 등단했습니다. 청마가 쓴 '행복'이란 시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입니다.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이 시 구절은 가슴을 울리네요. 

 

 

 

유치환의 우체통, 경남여고 교장을 2차례 지내고 부산 동구에서 생을 마감한 청마 유치환을 기리기 위해 부산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느린 우체통을 마련했습니다. 여기에 편지를 써서 넣으면 1년 후에 받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 쓴 편지를 1년 후에 받게 되면 기분이 묘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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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유치환 연보가 있습니다. 1900년대 격변기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까지 거친 역사의 산증인이시네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시인이 얼마나 힘든 삶을 보냈을까 생각해 봅니다. 

 

 

 

 

실내에는 엘피판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안내하시는 분들이 신청곡을 틀어주십니다. 저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들었어요. 그런데 방금 저희보다 먼저 어떤 남자분이 오셔서 똑같은 곡을 들었다고 하시네요. 세월이 지나도 유재하 앨범은 명반입니다. 카운터 앞에 있는 엽서를 사서 글을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후에 도착한다고 하네요. 저랑 친구는 그냥 예쁜 엽서만 사고 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부산여행 중 인상 깊었던 장소인 유치환의 우체통 전망대를 소개했습니다. 예쁜 그림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창밖으로는 북항 모습이 보입니다. 밤에 보는 야경이 더 멋질 것 같아요. 여행과 시, 다음에는 유치환의 생가가 있는 거제시에 가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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